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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브르 합의와 블랙먼데이

1987년 2월 루브르 합의 이후 일본을 포함한 글로벌 자산시장은 강한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는 앞으로 서독과 일본이 글로벌 수요처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글로벌 수요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이 쌍둥이 적자로 힘들어하고 있던 때에 새로운 글로벌 수요처가 나타났으니 전 세계가 환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1차, 2차 세계대전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험해보았던 독일(서독)은 인플레이션을 매우 경계하는 경향이 있기에, 서독은 자산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하자 금리인상을 준비합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그래도 자산시장 과열로 인해 걱정하고 있던 일본은 서독이 금리인상을 준비하자 이 움직임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당시 다우존스 차트

그러자 글로벌 수요가 위축된다는 공포가 생겼습니다. 기대감이 공포감으로 바뀌자 자산시장이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다우 존스 지수는 하루만에 22%이상 하락하는 블렉먼데이가 발생했던 겁니다. 다른 글로벌 자산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자 미국, 서독, 일본은 금리인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블랙먼데이는 금리인상 움직임을 막았습니다.

당시 일본은 엔화가치가 높아져 수입물가가 낮았습니다. 경기는 좋았고 국제유가도 낮아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물가가 안정되어 있으니 금리 인상을 추진하기도 애매합니다. 여기다가 블랙먼데이 발생은 금리인상을 단행할 경우 경기침체가 우려된다는 불안감을 조성했고 이로 인해 금리인상은 꿈도 못꾸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과 부동산은 자꾸 올라갑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점차 커지고 있었습니다. 

2.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

1989년 중반이 되자 일본은 다시 한번 금리를올립니다. 블랙먼데이의 충격도 해소되었고, 대미 무역흑자도 축소되어 미국의 눈치도 덜 보이고, 일본 내 물가상승폭도 커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금리인상 속도가 너무 빨랐습니다. 1989년 초 2.5%였던 일본 기준금리는 1990년대 중반 6%까지 올렸습니다. 1년만에 3.5%나 금리가 올라가자 일본의 자산시장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주요 대출 금리는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주택담보대출 LTV 120%가 가능했습니다. 집값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최대한 대출을 끼고 주택을 매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빠르게 올라가자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커졌고 이자부담을 감당하지 못했던 주택소유자들은 집을 너도나도 팔려고 했습니다. 모두가 집을 팔려고 하니 주택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자 대출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의 채무 불이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은행들의 부실이 커졌고 대출자에게 신규 대출을 발행해주는 걸 극도로 꺼려했습니다. 다행이 채무 불이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산 가격보다 부채가 훨씬 더 큰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부채 부담으로 인해 소비를 극도로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www.mk.co.kr/news/special-edition/view/2008/07/451138/

금리상승은 주식시장도 붕괴시켰습니다. 그러자 소비심리는 더욱 더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가 극도로 줄어들자 일본 내 수요가 줄었고 수요의 감소는 물건 가격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본의 경기침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보통은 한 국가 내에서 자산 가격 충격이 오면 해당 정부는 자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 대책을 내놓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본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조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정책을 펼치지 않았죠.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고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심리가 일본 내에 퍼졌습니다. 적절한 정책의 부재는 디플레이션의 장기화, 만성화를 진행시켰습니다. 더 심각한 건 그나마 펼친 정책이 실효성 없는 정책이었단 점입니다.

 

은행의 부실이 발생하면 보통은 정부나 중앙은행에서 관련 정책을 통해 금융 정상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는데, 은행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신용을 창출하고 돈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한 국가의 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은 부동산 버블로 인해 정부 혹은 민간 주도로 인프라 투자가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추가적인 인프라 투자 정책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은행의 부실대출을 처리하기보다는 인프라 투자 등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펼칩니다. 원인을 외면하고 피상적인 부분에 집중을 한 것이죠.

 

효과가 미미한 인프라 투자로 인해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는 커지고 있었고 은행권의 부실 대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졌습니다. 결국 1997년 부실 은행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은행의 정상화를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해 부실 채권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가 일어난지 7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3. 마무리

금리인상으로 인해 부동산 가격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이 일본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번쯤은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과정을 숙지하고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전망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글을 작성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는 단일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복합적인 상황이 종합되어 발생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일본 부동산 버블이 일어나게 된 핵심 원인을 꼽아보자면, 개인적으로는 금리와 대출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판단해봅니다.  그 이유는 다음 링크 글에 정리하였으니 참고부탁드립니다.

이상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폭락 과정 1편

일본의 부동산 버블 폭락 과정 2편 일본의 부동산 버블 폭락 과정 1편 1. 1970 ~ 1980년대 상황과 미국의 쌍둥이 적자 일본의 부동산 버블 형성 과정을 이야기하려면 1970~1980년대 미국부터 이야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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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계부채 위기와 일본의 부동산 버블 위기는 닮았다.

1. 금리와 부채 상황이 비슷하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인 1989년쯤에는 일본에서 주택담보대출 LTV 120%가 가능했습니다. 대출금만으로 집을 구매할 수 있었다는 뜻이죠. 일본인들은 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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